한국이 대표적 미래 에너지원인 수소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바다에선 수소추진선박과 액화수소운반선 등 미래 고부가가치선박으로 주목받는 선종의 핵심 기술을 선점하며 업계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수소 관련 선박이 바다에 나갈 날이 머지 않았다. LNG운반선의 화물창처럼 국산화에 실패해 해외 업체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 시장에서 더 큰 주도권을 가질 수 있으리란 기대가 나온다.
조선 3사, 수소연료전지 개발 총력
삼성중공업은 최근 프랑스 선급(BV)으로부터 암모니아 기반 수소연료전지 추진 원유운반선의 기본설계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암모니아 기반 수소연료전지는 암모니아를 수소와 질소로 분리하는 크래킹 기술을 이용한다. 분리된 수소를 연료전지에 공급한 후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번 인증은 11만5000톤급 원유운반선에 적용됐다. 저온에서 작동하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EMFC)를 탑재해 빠른 시동이 가능하며, 내구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다. 대용량 암모니아 크래킹 장비(5MWⅹ2)와 수소 연료전지 (2MWⅹ6)를 갑판과 엔진 룸에 분산 배치해 안전성을 높였고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중공업은 핵심 장비 국산화를 달성했다. 수소연료전지 선박에 국내 업체인 파나시아의 크래킹 장비, 빈센이 개발한 연료전지를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선박 개발에는 말레이시아 국영 선사 MISC와 프랑스 선급 BV도 참여했다. 선박 운용 정보를 제공하고 향후 경제성 평가를 담당한다. 삼성중공업은 이를 통해 기술 신뢰성을 확보하고, 상용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비단 삼성중공업만의 일이 아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자회사 HD하이드로젠을 통해 수소연료전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연료전지 시스템 분야 글로벌 리딩기업인 ‘컨비온’사를 약 7200만유로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컨비온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와 고체산화물 수전해전지(SOEC) 전문기업이다. SOFC와 SOEC는 수소에너지의 핵심기술로써, 고온에서 작동하는 특성상 기술적 난이도가 매우 높다. HD한국조선해양이 대형 배팅을 통해 기술 선점을 시도한 이유다.
진척도 뚜렷하다. HD하이드로젠은 2026년 하반기부터 한국형 SOFC 발전설비 양산에 착수할 예정이다. 첫 사업으로 울산시에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HD현대가 투자한 수소연료전지기업 엘코젠의 유럽 에스토니아 신규 공장도 개소하는 등, 수소연료전지 상업화에 한층 다가가고 있다.
한화 역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선급과 노르웨이선급협회로부터 선박용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개념 승인을 취득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다. 40여년간 항공엔진을 제작하며 쌓인 엔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화오션·한화엔진과 협업해 향후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PEMFC) 기반의 선박용 수소연료전지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수소, 운반도 중요하다
수소연료전지 개발로 ‘수소로 움직이는 선박’ 상업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핵심 연료원이 될 수소를 ‘운반하는’ 선박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LNG나 암모니아 등 현존 친환경 에너지원들은 저마다의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수소는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대체 에너지원 LNG는 석유 연료 대비 탄소 발생률이 낮고 황산화물(SOx) 95~98% 저감, 질소산화물(NOx)은 엔진에 따라 20~80% 저감 등의 이점이 있지만, ‘메탄슬립’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다. LNG 추진 선박이 운행할 때 메탄이 불완전 연소돼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실질 온실가스 저감효과는 23%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탄올 연료는 LNG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높고 상온에서 액체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엔진 내 연료 공급이 쉽다는 점은 장점이나, 비싼 가격과 적은 공급량이 발목을 잡는다. 선박뿐 아니라 자동차·항공 등에도 사용되는 연료인 만큼 수급 차질이 필연적이다.
암모니아 연료는 LNG와 메탄올보다 친환경적이지만, 개발과 상용화가 더디다. 독성과 부식성을 해결해 안정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연료의 부피도 다른 연료에 비해 크다.
대안으로 수소연료가 주목받는 이유다. 높은 탈탄소율은 물론,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원재료 덕에 가격도 저렴하다. 자연스레 수소연료운반선의 가치도 높아진다. 한국선급에 따르면, 2050년까지 건조될 액화수소 운반선은 200여척에 이를 전망이다.
관건은 기술 개발이다. 높은 순도의 액화수소를 전방산업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선 수소를 영하 253도의 초저온으로 액화해 운반해야만 한다. 초저온 충격인성과 보온성을 갖춘 화물창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IMO 제11차 화물·컨테이너 운송 전문위원회에서 ‘액화수소 산적 운반선 지침’ 개정안을 제안했다. 한국이 개발한 ‘선체 탑재형 액화수소 화물창’ 기술을 국제기준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해당 기술은 회원국간 세부 논의를 거쳐 새로운 국제기준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내년 IMO 제111차 해사안전위원회에서 개정안 최종 승인과 즉시 발효만이 남았다. 한국 기술력이 적용된 액화수소 운반선을 건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는 대한민국 연료운반선 화물창 개발 역사에도 일대 사건이 될 전망이다. 그간 LNG운반선 화물창의 경우 국내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서 프랑스 기술 업체에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운반해야만 했었다. 수소운반 역시 그간에는 일본업체 등의 주도로 독립형 화물창이 탑재된 액화수소 운반선만 인정받아 왔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내년 IMO 관련 위원회에서 개정안이 최종 승인되면, 액화수소를 운반하는 선박을 우리 기술로 건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우리 해운·조선 산업계가 글로벌 친환경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이코노믹 리뷰] 박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