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모든 원양 항행 선박의 탄소배출량을 완전 ‘제로(zero)’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불과 25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남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조선·해운 업계는 암모니아, 수소 등 다양한 대체 연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80㎿(메가와트) 이상의 추진력이 요구되는 초대형 선박에서는 이러한 연료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소형모듈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다.
이미 중국과 일본은 SMR 추진 대형 선박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한국의 대응은 지나치게 더디며, 정부의 인식 또한 미흡하다. 만일 설계와 건조의 주도권을 중국과 일본에 넘긴다면, 한국이 오랜 세월 쌓아온 ‘조선 강국’의 위상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선제적으로 SMR 추진 선박 설계·건조·운항 기술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세 가지 치명적 기술 난제가 있다.
첫째, 경제적 관점이다. SMR 추진 선박은 기존 일반 선박보다 건조비가 최소 두 배 이상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선주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는 선박의 평균 수명을 기존 25년에서 50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기술적 기준과 국제 규정의 제정이 시급하다.
둘째, 안전성 관점이다. SMR 구획은 충돌·좌초와 같은 해난사고뿐 아니라 드론을 이용한 외부 공격 등 다양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설계가 필수적이다. 심지어 선박 전체가 침몰하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SMR 구획만큼은 구조 손상이 전혀 없도록 설계·제작돼야 한다.
셋째, 전주기 실시간 안전 관리와 유지비 절감이다. 기존 선박과 달리 SMR 추진 선박은 선체 구조, 기계 장치, 선원 안전을 전주기에 걸쳐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현실을 가상세계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엔지니어링(Digital Healthcare Engineering, DHE) 시스템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는 유지·보수 비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선박의 신뢰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SMR 추진 선박 기술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제는 정부와 산업계가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선제·종합적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한국이 경쟁국보다 앞서 이 기술을 선점할 때만이, 우리는 조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백점기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기계공학부 교수·글로벌산업기술협력센터장